사이코지만 괜찮아


와, 슈트 입으셨네요?

엄청 멋있어요

 

너, 앞으로 이거 입지 마

왜?

별로야, 보호사복이

훨씬 잘 어울려

아, 그래?

몇 벌 더 사 볼까 했는데

정장이 의외로 편하네

보기엔 무척 불편해, 입지 마

알았어

그럼 너도 이런 옷 입지 마

보기 무척 불편하니까

에이씨, 야!

입지 말라면 입지 마

확 찢어발겨 버린다?

어? 입지 마!


네가 봄날의 개라며?

내가 왜?

네 친구 재수인가 재미인가

걔가 그러던데?

넌 절대 속을 안 보여 주고

혼자만 끙끙 앓는 애라고

그게 봄날의 개잖아

 

둘이 만났어?

네가 대체 뭐 때문에 빡이 친 건지

물어보려고 집에 불렀지

피자 열 박스에 총알같이 날아오더구먼

그래서? 뭐래?

더 알려고 하지 말래

네 속 알아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그래서 접기로 했어

이제 하나도 안 궁금해

고문영

나, 누굴 지키고 보호하는 일

너무 지겹고 지쳤어

그러라고 태어났으니까

그렇게 먹고는 살아야 되니까

억지로 하는 일이었어

근데?

이제 그거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내 목표로 삼아 보려고

가족을 목숨 걸고 지키는 거

생각해 보니까

꽤 멋지고 근사한 거 같아

누구든 건들면 절대 가만 안 둬

뺏어 가면 찾을 때까지 쫓을 거야

내가 지켜 낼 거야, 꼭

그 가족에 나도 있어?

가족사진을 찍었으면

가족이지


나중에 가족사진 나오면

저기다 걸어야겠다

칙칙했던 분위기가 확 살겠네

이참에 인테리어나

새로 싹 바꿔 볼까?

그 방도 남자 둘이 쓰기엔

너무 좁단 말이지

그래서 방을 바꾸자고?

굳이 뭐 하러

네가 내 방을 같이 쓰면 되지

합방하자

 

싫어, 안 돼

왜?

너희 부모님이 쓰던 방이잖아

그게 뭐?

 

고문영

응?

내가 다른 데 가서 살자 그러면 갈래?

왜?

갈 거야?

또 도망가야 돼?

오빠가 나비 꿈 꿀 때 됐어? 어?

그런 거면 걱정하지 마

내가 그 나비 확 찢어 죽여 줄게

너 알지? 나 나비 잡는 킬러인 거

아니야, 그런 거

만약 나비가 나타나도

절대 죽이지 마

넌 그러면 안 돼

왜?

내가 또 겁먹고 도망치면 어떡할래?

쫓아가 잡아야지

잡아서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릴 거야

오케이, 알았어, 약속할게

손가락 걸어, 도장도 찍고

그 도장 말고


볼에 왜 연, 연지 곤지가 찍혔지?

 

어? 아, 그,

뜨거운 물로 샤워해서 그런가?

부, 부끄러워?

보, 볼이 빨갛고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가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면서

내 눈을 피하면 부끄, 부끄러운 건데

너 부끄러운 짓 했어?

아니, 어, 좀,

뽀뽀했어? 뽀뽀?

어, 사, 살짝

싸, 싸우는 거보다 뽀뽀하는 게 나아, 어

싸, 싸우지 마, 혼나

그럼 형은 내가 좋아, 문영이가 좋아?

난 고, 고, 고길동이 좋아, 나는

쟤들 왜 싸워?

어, 두, 두, 둘리 둘리 볼 때

말 시키지 마, 그게 예의야


너 일할 때 승재 씨나 이 대표님

불러서 같이 있으면 안 되나?

 

글 쓸 때 옆의 누가

걸리적거리는 거 싫어

문은 잘 잠갔지?

또 아무나 함부로 문 열어 주지 말고

좋다

뭐가?

내 걱정 해 주는 거

앞으로 네가 걱정할 짓만

골라 해야겠다

오빠, 오빠

오빠?

어떤 년이야! 어?

 

아, 아,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글 써

에이씨, 분명 어린애 목소리였는데


생긴 게 다 마음에 안 들어

봐, 목이 다 돌아갔잖아

왜 다 뒤통수야? 뒤, 뒤통수 아니고

얼굴, 얼굴이야, 얼굴

이 시꺼먼 게 얼굴이라고?

눈, 코, 입은 다 어디 갔어

뭐, 졸라맨이야? 표정이 없잖아, 표정이

동화는 메시지가 반 캐릭터가 반이라고

내 주옥같은 글에 이따위

얼굴 없는 표정을 그리,

어려워

표, 표정, 표정 그리는 거

나는 너무 어, 어려워, 어려워

 

얼굴 카드 있잖아

분노, 짜증, 행복

뭐, 그런 거 보고 따라

그리면 되지 않나?

따, 따라, 따라, 따라 그리면

진짜 문상태 그림이 아, 아니지

진짜, 진짜 내 게 아니지, 그건

그럼 다시 공부해

오빠 관찰 잘하잖아

맨날 동생 얼굴만 뚫어지게

보고 있지 말고

남들 표정도 잘 관찰해 봐

그래서 문상태표

얼굴 카드를 만들면 되지

다음 주까지 숙제야


웃겨

부모는 죽을 때 되면

다들 무슨 면죄부라도 받나 봐

'당신 죄를 사하노라'

자식한테 그딴 말을

꼭 들어야 눈을 감나?

너 나중에 안 아플 자신 있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속엣말을 털어놔야 속병이 안 난다며

앞으론 아버지한테 말할 기회가 없어

그래도 괜찮아?

상관없어

할 말도, 후회할 것도 없어

어렸을 때 정말 싫어하는 동화가 있었어

'장화홍련' 난 거기 나오는

아빠가 너무 싫었어

계모한테 자식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죽어 나가는데도 아빤 모른 척 방관만 하잖아

괴롭히는 사람보다

방관하고 방치하는 사람이 더 나빠

장화, 홍련은 결국 아빠가 죽인 거야


아빠가 여기 다신 못 오게

내가 쫓아 줄까요?

아니면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다 할 동안 내가 옆에서 지켜 줄까요?

지켜 주세요

선해야

아빠 싫어, 엄마가 나 때릴 때

아빠 그냥 나가 버렸잖아

내가 계속 아빠 불렀는데

아빠 그냥 가 버렸잖아

나 안 지켜 주고

나는 나 때린 엄마보다

아빠가 더 미워

나 귀신 안 들렸는데

무당 할머니 집에 버리고

계속 기다렸는데

아빠만 계속 기다렸는데

아빠 너무너무 미워



주리야 만약에 내가 너희 엄마

딸로 태어나고 네가 우리 아빠

딸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럼 넌 아마 우리 엄마한테

벌써 맞아 죽었을걸?

싸가지 없어서

맞네

 

난, 엄마가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말을 잘 듣는

딸이 되려고 노력했지

그래야 미움을 안 받으니까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어

딱 한 명만 빼고

그 애랑 같이 도망가고 싶었는데

엄마 때문에 그러지 못했어

아빠는? 네 곁에 없었어?

엄마가 자기 방식대로 날 길렀을 때

아빠가 날 위해 해 준 건 딱 한 번

동화책을 읽어 준 게 다야

근데 주리야

나는 그 딱 한 번의 기억이

지워지지가 않아


문영이가 그걸 다 봤어

내가 그 여자를 죽일 때

그 어린게 다 봐 버렸어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고 작가, 참 잘 컸네


나 좀 그만 쳐다봐

 

지금 슬픈 얼굴이야?

아니, 이쁜 얼굴

스, 슬픈 거 창피한 게 아닌데

안 슬퍼

아닌데, 아니, 아닌 거 같은데

아닌 거 맞는데

갈까?

배고파

뭐 먹고 들어갈까?

나 짬뽕

싫어

강태가 해 준 메추리알에 밥 먹을래

그거 순덕 아줌마가 해 준 거야

어, 순덕 아줌마 메추리알 엄청 맛있어

우리 강태도 찌개 엄청 잘해

어, 반찬은, 어휴…

완전 맛없어


나, 이 집 팔까?

 

왜?

그냥 이제 뭔가

다 새로 시작하고 싶어

나쁘지 않은데?

이 집 팔아서 이 대표한테

출판사 하나 차려 주고

남은 돈으로 캠핑카를 사는 거지

오빠도 벽에 나비만 그리면

미션 끝이니까

이참에 너도 병원 확 때려치워

그리고 우리 셋이 목적지 없이 놀러 다니자

그래, 꼭 그러자

그럼 이왕 돈 쓰는 김에

나 비싼 슈트 좀 몇 벌 사 주고

세렝게티 여행도 보내 주고

그냥 아예 니가 나 평생 먹여 살리면 안 돼?

어디 어울리지도 않는

제비 코스프레야?

너, 솔직히 말해 봐

뭘?

 

진짜 네가 원하는 거

문강태의 장래 희망

 

음, 아니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없는 거야,

아닌 거야?

나, 학교 다니고 싶어

야간도 괜찮아

학교? 학교

안 돼

왜?

CC 하자고 들러붙는 년들 때문에 안 돼

정 다니고 싶으면 그냥 사이버대 다녀

그러는 넌, 왜 동화 작가가 됐어?

나? 내가 동화 속 세상을

제일 잘 아니까

난 아빠가 지어 준 이 성에서

진짜 공주님이었거든

원래 공주들의 삶은 참 다 힘들어

엔딩만 좋아, 염병

원래 엔딩이 좋으면 다 좋은 거야


오늘, 오늘은 나비 꼭 그, 그릴 거야

나 그, 그릴 수 있어

 

기대할게, 형

나 수업 끝나면 기다릴 테니까 같이 가자


저거, 어, 어떡해, 저거

저거 우리,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죽인 아줌마 옷에

묻은 나, 나비, 그

어, 나비! 나비!

저 나비,


나비가 고대 그리스어로 프시케야

그 프시케가 어떤 단어의 어원인 줄 아니?

사이코

어때?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나비인데

엄마 예뻐?


왜 저, 왜 저, 저 나, 나비가 저

왜 저 나비가 저기 있지, 저기?

저 나비가 우리 엄마 죽였는데

아니야

나, 나 저거 안 그렸는데

무, 문영아

아니야

 

내가 안 그린 건데,

내가 안 그렸는데

지워, 지워, 지워, 나비 지워, 지워

내가 안 그렸는데, 안 그렸는데

아니지? 어?

아니지?

문영아, 제발

아니라고 말해

제발, 문영아

아니라고 말해!



It's Okay to Not Be O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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