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형, 입어 봐 봐

음, 이게 멋진데?

 

멋진거,

멋진 표정 어떤 거야?

어떤 거, 어떤 거


내일 출판 기념 사인회

한 시간 내로 끝내

 

뭐든 빨리 끝내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승재 씨?



재수 씨한테 들었어요, 여기 있다고

아-

또 이사 간다면서요

 

여기저기 미련 없이 훌훌 떠나는거

좀 부러워요

갈게요

저기, 강태 씨

우리 집에 빈 방이 하나 있어요

아, 그러니까 안 쓰는 방인데

엄마랑 나는 1층에 따로 사니까

혹시 성진시 내려오게 되면

집은 따로 안 구해도 될 거 같아요

진짜 가야겠다

신경 써 준 거 고마운데, 거긴 안 가요

왜요? 너무 시골이라?

네, 시골이라




미안해, 형,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내가 미안해, 미안해

어이!

사과하지? 해요, 사과

내가 왜 이 자식한테,

아니, 나한테

뭐?

아저씨 때문에 지금 내 사인회가

엉망이 돼 버렸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이 빙신같은,

이렇게 머리끄덩이를 잡는데,

소리를 안 지를 사람이 있나?

봐, 당신도 지르네

 

아, 놔, 놔, 놔!

아니, 그러면, 어?

웬 미친놈이 애한테 해코지를 하는데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어?

아, 정신과 의사세요?

미친 걸 어떻게 아셨대?

아, 그거야 막 말을 막,

막 주절주절 막 이상하게 하니까!

미친년

뭐야?

 

아니, 말을 막 주절주절하시길래

미친년인 줄 알았지


근데 형 뒷머리가 되게 예민한가 봐

성감대 그런 거랑 비슷한가?

아! 폭탄 스위치

만지면 펑 터지고 그런 거지?

근데 이발은 또 어떻게 해?

 

제발 1절만해

이제 제대로 봐 주네?

뭐 하는 짓이야?

모자 쓰지마,

예쁜 얼굴 안 보여

왜 빨개져?

아! 넌 앞머리가 성감대구나, 그치?


애인? 연애도 해?

꿀물 먹었으면 입 다물고 가지?

이야, 인상 쓰니까 얼굴이

엄마랑 아주 똑같네

엄마가 글도 잘 쓰고, 참 섹시했는데

모녀라 그런가 여러모로 닮았어

헛소리 치우고 당신 갈 길이나 가지?

지금이야 좋겠지

근데 조심하는 게 좋을걸?

유명 소설가였던 엄마는

어느날 갑자기 사망 소식이 들려왔고

잘나가던 건축가 아빠는 머리가 회까닥해서

정신 병원에 감금됐다는데

그러면 나중에 당신은 어떻게 되려나?

이 여자랑 엮이면 끝이 다 안좋아

명심하쇼

 

이거 놔

가지 마

나 좋아해?

책임질 거야?

감당할 수 있어?

네가 뭔데, 날 붙잡아?



에이씨, 깨끗이 확 뒈졌어야 됐는데

죽어 마땅한 쓰레기들은

왜 하나같이 명줄이 긴가 몰라

염병할,씨

거기 서

뭐 하는 거야?

 

심호흡해

더 깊이

뭐 하는 거,

 

눈 감아

 

스스로 통제가 안 될 땐

이렇게 양팔을 엑스 자로 교차해서

양쪽 어깨를 번갈아서 토닥여 줘

이러면 격했던 감정이 좀 진정될 거야

이게 뭔데?

나비 포옹법

트라우마 환자들한테 추천하는

자가 치료법이야

뒤에서 이러는 건 내 취향 아니야 

트라우마는 이렇게 앞에서 마주봐야지
뒤에서 보듬는 게 아니라 


갑자기 왜 도망쳐?

형한테 가는 거야

천천히 가, 발 아파, 야!!

나 화나게 하지 마, 터져

그래서 나비 포옹 알려 줬잖아

그깟 걸로는 어림도 없어

네가 내 안전핀 해라

뭐?

내가 펑 안터지게,

네가 꽉 붙잡고 있으라고

아깐 잡지 말라며

무슨 자격으로 잡냐 안 그랬어?

오, 뒤끝

 

어, 있어, 뒤끝

그래서 지금 자격 주잖아

고문영 안전핀

그걸 왜 내가 해?

보호사니까

위험인물 마크하고 지키는 게

보호사 일 아니야?

딴 데 가서 알아봐




안데르센 동화 중에 '빨간 구두'라고 알지?
소녀는 엄숙하고 경건한 장소에서도
굳이 꼭 그 빨간 구두를 신고 가지 
그 구두를 신으면, 두 발이 저절로 춤을 추게 되고 
영원히 춤을 멈출 수도, 구두를 다시 벗을 수도 없게 돼
그런데도 소녀는 빨간 구두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
결국 사형 집행인이 나서서 소녀의 발목을 잘라 냈지만
잘려 나간 두 발은 빨간 구두를 신은채 계속해서 춤을 췄어
억지로 갈라놔도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게 있어

집착은, 그래서 숭고하고 아름다운 거야

나, 이제야 내 빨간 구두를 찾았어

당신이 여길 왜,

왜긴, 보고 싶어서 왔지


It's Okay to Not Be Okey


 

© な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