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E04


뭐하냐
뭐하냐고

이불 깔잖아

그걸 왜 거기다

같이 자자
아, 안잔다 그랬나?
그럼 그냥 같이 좀 붙어있자
베개 가지고 와

아까부터 진짜 까부네

왜, 겁나?
내가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겁나야 될 건 너지
내가 무슨 짓 할까 봐

난 겁 안 나

넌 나 사랑 못 해
어떤 인간도 그런 적 없어

할 수 있어

모두 날 원망하거나 원하지
사랑하지 않아

난 할 거야
해야 되니까

이리와 그럼

네 발로 들어왔어

후회하지 마

후회 좀 하면 어때
어차피 죽을 거

연민을 갖는다는 게 어떤 건지 깨달았니

자주 웃음이 나고 때론 가여워지지

갈수록 더할 거야


안 되겠다

그럼, 오늘은 이걸로 끝?

네 얘기를 좀 해봐
한 사람을 사랑하려면
자고로 그 사람의 세계를 알아야지
보여줘 네 세상을

내 세상?

내 무의식의 세상이 여기인 것처럼
네 무의식의 세상도 있을 거 아니야

또 말해두겠지만
난사람이 아니야
내세 상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닐 거고



근데 뭐 원하시는 데로

이게 내 세상이야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신
닿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란
쓸쓸하겠지
절대 사랑하고 싶어지지 않을 만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네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너, 손

가만있어

보지마

볼 게 못 되니까

돌려줄 게
내가 가져간 거

내가 그랬잖아
날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모두 날 원망하거나 원하지
혹은 두려워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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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な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