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 영원의 군주 


2020년 봄, 평행세계의 문이 열린다.

초행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거나 분명 처음 하는 일인데 전에 똑같은 일을 했던 것 같은 이상한 느낌. 

우린 그것을 ‘데자뷰(Deja-vu)’라고 하고 현대의학은 ‘데자뷰’를 ‘지각 장애’의 일종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그것이 뇌의 착각이 아니라면..

 

“우리가 아주 잠깐, 우주의 비밀을 엿본 것이라면? 

그 이상한 느낌이 바로 평행세계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본 것이었다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생각.

이민 가고 싶어. 다시 태어나고 싶어. 이번 생은 망했어.

누구나 한 번쯤 먹었을 마음.

나도 저런 차 한번 타봤으면. 나도 저런 집에 한 번 살아봤으면. 나도 저런 재벌 부모 만났으면. 

그런 당신의 귓가에 누군가 속삭인다.

 

“‘나’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세계의 ‘나’와 당신을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은 그와 당신의 삶을 바꾸시겠습니까?”

내가 가진 삶. 내가 가진 사람. 내가 가진 사랑. 그 모든 것을 버리는 선택이다. 

물론 나 자신조차도. 눈치 챘겠지만 나와 바뀐 평행세계의 내가 어떻게 되는지는 절대 묻지 말자.

 

“신(神)은 인간의 세상에 악마를 풀어놓았고 그 악마는 평행 세계의 문을 열고 말았다.” 이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노골적인 질문과 사악한 대답.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는, 평행세계에서 이 세계로 온. 차원의 문(門)을 닫으려는 이과(理科) 황제 이곤과 누군가의 삶. 사람.. 사랑을 지키려는. 문과(文科) 형사 정태을의 공조가 때론 설레게 때론 시리게 펼쳐지는 차원 다른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다.


이곤 (李袞. 33세. 대한제국 황제) 아명 : 이곤 李坤

 

  그는 대한제국 3대 황제다. 그는 이름마저 용포를 입었다. 이 곤(袞). 수려한 외모, 기품 있는 자태, 고요한 성품에 문무를 겸비한 완벽한 군주, 가 국민들이 보는 이곤이었다. 하지만 사실 곤은 말수 적고 실수 없고 예민하고 강박적이었다. 가장 뜨거운 불꽃은 푸른색이다. 곤이 그랬다. 너무 뜨거워서 차가운 인물. 

  기미 없이는 물 한 잔 입에 대지 않고, 몸에 타인의 손이 닿는 것도 극도로 꺼렸다. 곤에게 궁은 가장 안전한 집이기도 가장 위험한 전장이기도 했으니까. 곤에게 궁은 언제든 제 아버지처럼 죽을 수 있는 자리였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목도했던 역모의 밤은 잊을 수 없었고 잊어서도 안됐다. 역모의 밤 이후, 곤은 매일 밤 죽음을 베고 자는 황제였다. 

  혼인엔 뜻이 없고 후사엔 관심이 없으니 어떤 날은 그림자처럼 붙어 지내는 조영과, 어떤 날은 매주 국정보고 일정이 있는 여성 총리와 스캔들이 터졌다. 위인전보다는 평전이 취향이고 모호한 말보다 정확한 숫자들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이과 남자였다. 그래서 곤은 곧잘 궁을 탈출하곤 했다. 해군장교로 2년간 복무한 것도, 학술대회로 해외 여러 곳을 떠도는 것도 탈출의 일종이었다. 

 그렇게 나선 길이었는데, 곤은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다. 미세하게 다른 공기. 기억과 다른 건물들. 무엇보다 대한제국 황제인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이 여자. 여긴 정말 평행세계인가? ‘1’과 ‘0’의 사이를 넘어 온 건가 내가? 그런데 이 여자... 그가 아는 얼굴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위. 정태을.’ 역모의 밤에 8세 이곤이 주워 든 신분증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건축가 ‘풀러’는 문제를 풀고 나서 풀이가 아름답지 않다면 나는 그 답이 틀렸음을 안다, 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여자와 내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아름답게. 


정태을 (鄭太乙. 30세. 강력반 형사) 

 

  태을은 또래들이 백설 공주와 인어공주와 신데렐라에 심취해 있을 때 아빠와 나란히 앉아 <경찰청 사람들>에 심취했다. 사과에 독을 발라 백설 공주에게 먹인 왕비는 ‘식품위생법위반’, 왕자의 심장을 찌를 수 없어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는 ‘불법가택침입’,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은 신데렐라는 ‘아동학대’라고 지적해 친구들의 동심을 파괴했다. <경찰청 사람들>이 272부작으로 막을 내렸을 땐 한 세상이 무너졌다. 그러다 뜻밖에도 꿈이 생겼다. 그래. 내가 <경찰청 사람들>이 되자. 그러나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 지구가 둥글다고? sin이 ‘죄’가 아니라 삼각함수라고? 태을은 너무나도 ‘문과 여자’였다. 그렇게 태을은 풀지 못한다면 세상의 모든 수학 문제를 외우겠다는 중대결심후 경찰대에 합격하는 기적을 행했고 강력반 형사가 된 지 6년 차다. 죄지은 놈은 발 뻗고 못 자고 쫓기는 놈은 반드시 잡히게 되어있다, 가 그녀의 지론이다.  

  그런 태을의 <경찰청 사람들>이 삐끗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난 백마 탄 왕자, 아니 평행세계에서 온 황제라는 이 미친놈. 일단 도로교통법 위반은 확실하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는 와중에 저렇게까지 잘생길 필요가 있었을까. 더군다나 이 미친놈의 진술이 어쩐지 진짜 같다면.. 나 형사로서 끝난 건가?


조영 (曺影. 29세. 황실 근위대 대장)  

 

  이곤의 최측근이자 경호원이다. 정식 소속은 황실 근위대 1중대 대장이지만 이곤은 늘 조영을 ‘천하제일검’이라고 불렀다. 검도 유단자이긴 하나 21세기에 검을 쓸 리도 만무하고 근위대가 휴대하는 P30(자동권총)의 뛰어난 성능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말이다. 참으로 낭만적인 주군이다. 대대로 무신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으니 주군의 그림자가 운명이었다 하겠으나 영에게 곤은 형제이자 친구이자 국가였다. 

  조영이 이곤을 처음 본 건 4살 때였다. 8살의 제 주군, 이곤의 즉위식이었다. 피처럼 붉은 대례복을 걸친 어린 황제는 비극이 세운 용상에 버려진 듯 앉아 있었다. 울음을 꾹 참으면서. 그 날이었나. 제 주군의 행복을 바랐던 순간이.

  조영은 선황제의 친구이자 해군 사관학교 동기였던 부친을 따라 궁을 드나들었다. 제 주군이 처음으로 저에게 하사했던 검은 휘두를 때마다 노래가 나오는 뽀로로 검이었다. “넌 오늘부터 천하제일검이다” “맛있겠다. 천하제일껌” 하하하. 어린 황제는 한참을 웃었다. 궁인들이 놀라 달려왔다. 궁에서 이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이곤은 오로지 영이를 보면서만 웃었다. 이곤은 오로지 영이 앞에서만 울었다. 그 날이었나. 제 주군이 외롭지 않길 바랐던 순간이. 


조은섭 (曺誾燮. 29세. 휴학중. 사회복무요원) 

 

  은섭의 장래 희망은 정확히 61개였다. 28년을 살았으니 태어나 응애- 하던 순간부터 꿈이 있었다고 해도 매년 두 번 이상 바뀌었단 소리다. 소방관, 경찰관, 공무원을 지나 아이언맨, 아이돌, 대기업 회장 사위까지 나열하기도 벅찬 꿈들은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현재, 대학 휴학생이자 경찰청 민원실 근무를 명 받은 사회복무요원이다.  

 은섭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건 “내 마 인제 세상이랑 한판 뜬다. 다 내끼지 뭐.”를 입버릇처럼 외치던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였다. 유난히 금슬 좋은 부모님 덕에 쌍둥이 동생들이 태어났고 덕분에 졸업은 저만치 날아간 채 독박육아가 시작됐다. 밤샘 수유와 이유식 만들기로 눈 코 뜰 새 없이 2년, 드디어 은비까비의 어린이집 첫 등교 날, “내 마 인제 진짜 세상이랑 한판 뜬다. 다 내끼지 뭐.”를 외치며 복학 했으나, 복학 축하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차에 치일 뻔 한 꼬마를 향해 몸을 날렸고 퇴원할 때쯤엔 영장이 날아왔다. 결국 62번째 장래희망은 민간인. 

 드디어 전역을 며칠 앞두고 생애 처음 꿈을 이룰 예정인데, 자신이 대한제국 황제라는 이상한 남자를 만나 난생 처음, 것도 두 번이나! 기절한다. 첫 번째 기절은 스포일러니까 빼고 두 번째 기절은 이랬다. 너님이 대한제국 황젠데 거긴 모병제라고요? 어쩌면 은섭에게 63번째 꿈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구서령 (具瑞怜. 38세. 대한제국 총리)

 

  대한제국 최연소 총리이자 최초의 여성 총리다.

  평생 배 한 척 없이 남의 뱃일이나 해주는 술꾼 아버지와 생선 대가리를 치던 억척스러운 어머니 사이에서 서령은 악착같이 공부했다. 그렇게 최고의 학벌을 얻고 앵커로 아홉시 뉴스까지 맡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빽 없고 돈 없는 서령이 더 이상 올라갈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서령은 결혼을 택했다. 시댁의 돈과 명예, 정보와 비리를 무기로 정계에 입문했고 당대변인으로 아홉시 뉴스에 더 많이 얼굴을 비추면서 서령은 이번엔 이혼을 택했다. 

  정치란 싸움의 기록이고 서령은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서령은 자신의 이혼까지 이미지 메이킹 했고 젊은 여성유권자들은 환호했다. 지적인 외모와 유려한 언변, 진보적인 정책까지 더해져 서령은 정계에 입문한 지 7년 만에 총리에 당선됐다. 

  총리가 된 서령의 다음 타겟은, 황제 이곤이었다. 시작은 필요였다. 완벽한 황제와 젊은 여성 총리가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그림은 국민들의 가십거리로도 훌륭했다. 이곤과 함께 있는 서령의 사진이 뉴스에 뜰 때마다 서령의 지지율은 대폭 상승했다. 태평성대였다. 그러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는 그냥 이곤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 자신의 감정이 싫지 않았다.

  그런데 이곤에게 여자가 생겼다고 한다. 서령은 화가 났다. 너도 내가 필요했을 텐데. 너의 옆자리에 어울리는 여자는 나였을 텐데. 이곤도 서령도 암묵적으로 스캔들을 이용했고 서령은 이곤의 계산들이 마음에 들었었다. 그런데 너는 사랑으로 움직이기도 하는구나. 태어날 때부터 높았던 너라서 고작 사랑으로 움직이는구나. 서령의 질투는 자꾸만 가장 캄캄한 쪽으로만 치달았다.   


이림 (李霖. 금친왕. 69세. 40대 후반의 얼굴)

 

  선황제의 이복형이자 이곤의 큰아버지다. 태어나기는 첫째 아들이었으나 어미는 황후가 되지 못하고 죽어 귀인으로 추증되었다. 서자라는 이유로 열세 살이 되어서야 금친왕으로 봉해졌다. 이림은 억울했다. 적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황제가 된, 그저 선하기만 한 제 이복형제는 세상을 손에 쥐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쥐고 있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 ‘세상’이란 것도 몰랐다. 정확히는 두 개의 세상. 

  시간과 공을 들인 이림의 분노는 구체적인 계획이 되었고 어느 밤, 칼을 빼 들었다. 역모였다. 황제를 시해하고 만파식적을 손에 넣고 어린 조카의 목을 졸랐다. ‘욕망’은 결국 화를 불렀다. 만파식적이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쫓기던 걸음이 대숲에 다다랐을 때, 새로이 문이 열렸고 문을 넘어서자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림은 제 앞에 이 문을 열어둔 신(神)을 비웃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은 틀렸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 그는 인간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인생을 바꾸겠는가. 인간들은 욕망으로 눈빛이 변했다. 이림은 그 하찮은 인간들의 욕망을 꿰뚫고 그 욕망보다 거대한 존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곤의 손에 있는 만파식적의 다른 한 동강을 반드시 손에 넣어서, 두 세상의 신(神)이 되기로. 



The King : The Eternal Mon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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