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E16


상무님, 그, 혹시
형주일보 황상현 기자? 잘 아세요?

이름만 알지 상종하고 싶진 않은 종류야

왜요? 

스타트업 저격 기사 전문이잖아
뭐, 홍보 기사 써 준다고 
지분 나눠 달라고 지저분하게 굴고
거절하면 뭐, 없는 리스크 만들어 써대고
질 나쁜 기자야

아, 그래요?
지금 청명컴퍼니 취재하겠다고 왔던데

왜, 아이템이 뭐래

모르죠, 약속도 안 잡고 온 거 같은데
뭐 걸리는 거 있어요?

입찰 앞두고 있잖아

상대 경쟁사에서 스크래치 내겠다고 
제보했을 수도 있고

근데 뭐, 제보랄 게 있을까요?
청명컴퍼니가 책잡힐 만한 게 딱히…

랜섬웨어

씨… 


저, 혹시 서 대표님 여기 있습니까?

 

네, 지금 인터뷰 중이에요

인터뷰 중단시켜야 돼요
저 황상현 기자 이 바닥에서 아주,

유명하죠
하, 네이쳐모닝 시절 많이 봤어요
별명이 스타트업 탈곡기일걸요? 
탈탈 턴다고

근데 안 말려요?

네, 안 말려요
지금 잘 대응하고 있으니까

대응을 잘해요?

중요한 얘기가 남았다고요?

그럼요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끝내면
어떤 논조로 기사가 나올지 빤하잖아요
청명컴퍼니는 스마트 시티 자율 주행 
플랫폼 입찰에 참여한다
자율 주행에서 해킹은 
사람의 목숨을 위험하게 한다
청명컴퍼니는 그 위험한 해킹을 
당한 적이 있다, 맞죠? 

아이고, 뭐, 팩트가 그렇잖아요
뭐가 더 있어요?

기자님, 더 중요한 거 알고 싶지 않으세요?

더 중요한 거? 

네, 해킹한 범인이 누구일까

범인을 알아냈어요?

그럼요

저희가 이벤트 로그 분석을 통해서
공격자를 확인했거든요
그 공격자 노트북을 포트 스캔해서 
호스트 네임을 확인한 결과
감염됐을 때 PC 네임과 일치하는 걸 확인했고요
그 증거들을 저희가 저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에게 넘겼습니다

방금 경찰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용의자 신병 확보했다고

용의자가 누군데요?

신현과 신정
저희 예전 개발자들이에요
그 랜섬웨어 사건 터지고
얼마 안 있다가 모닝 AI CTO로 
스카우트됐죠

사건 터지기 직전 원상수 센터장과
접촉하는 정황도 증거로 제출을 했으니까
수사하면 배후가 누군지도 밝혀지겠죠?

이 기사를 황 기자님이 
어떻게 쓰실지 너무 기대돼요

아이고, 이거 뭐
아, 벌써 해결이 됐다고 하니까
써 봤자 뭐, 데스크에서 킬당하겠네, 에이

아니 범인도 잡히고 배후가 무려 
모닝그룹 회장 아들인데
이걸 안 써요?

아직 수사 중인 사건을 쓰면 
안 되는 거거든요

다른 기자님들은 
수사 중인 사건 잘만 쓰시던데요

결론 나면 쓰실 거죠?

예, 결론 나면 써야죠, 당연히

그, 수고하세요

네, 들어가세요

꼭 쓰세요, 안 쓰면 배후랑 유착 있다고 
다들 의심할 겁니다

다행이네

급하게 오셨나 봐요

예?

사원증 돌아갔어요

아,

또 저번처럼 실수할까 봐

서 대표도 벌써 3년 차예요
3년이면 서당 개도 풍월을 읊는 세월이잖아요

이 정도 대처는 당연히 해야죠

그렇죠, 그래야죠

제가요?

아이, 섭섭은 전혀
아, 시원만 합니다, 시원만

아, 후련해
이제 진짜 마음 놔도 되겠어요

아, 그럼

아닌데, 섭섭 같은데


상무님 왜 저래요?
괜찮은 거예요?

음, 그런 듯 아닌 듯
그런 거 같은데?

동천아 



나 일찍 좀 퇴근한다
중요한 연락 오면 전화하…
아니다, 가능한 한 문자로 해

들어가세요

아, 아직 갱년기는 이른데



뭐야, 누구지?

오, 할머니



아, 여, 여기 어떻게…

며느리가 데려다줬지

아, 예
하, 할머니, 여기, 이쪽으로, 예

조심해서, 조심하고

 

달미가 네 집이 그렇게 좋다던데
아이고, 아쉽네
눈 좋을 때 진작에 좀 와 볼걸, 에이

핫도그 주려고 오셨어요?

잘 오셨어요 
나 안 그래도 드릴 말씀 있었는데

할 얘기? 뭐

가게는 이미 차리셨으니까 됐고
그, 할머니 집 계단 불편하지 않으세요?
이참에 아파트로 이사 가시는 건 어때?
내가 아파트 하나 해 드릴게

야, 그놈의 헛소리는 지치지도 않냐? 어?

 

아, 그럼 다른 거 아쉬운 거 없어요?

아, 없어
정 걸리면 그럼
나보다 더 아쉬운 사람한테 
가 보든가, 그럼, 에이그

아, 할머니 빚을 왜 다른 사람한테 갚아요

 

아, 그럼 말든가
아유, 빚 얘기 할 거면 나 그냥 가련다, 야
지겨워, 나, 아유

아유, 지겨우면 그냥 눈 딱 감고 받으세요
나 같으면 지쳐서라도 받고 땡 하겠네

 

받고 땡?
순딩이 너 어디 가냐? 어?

아, 가긴 뭘, 어딜 가요

지평아

아니, 할머니가 그랬잖아요, 저기,
잘 먹고 잘 살면 연락하지 말라면서
나 요즘 지나치게 잘 먹고 잘 살아요
그래서 내가 요즘 좀 바빠요
나중에 힘들면 내가 따로 연락할,

그러지 마

잘 먹고 잘 살아도 연락해
자주 와, 별일 있어도 없어도 
그냥 와


와서 실없는 소리라도 하고 가

내가, 귓구멍이 막히고 눈이 삐어서

별소리, 별짓 다 해도 돼

울어도 되고 웃어도 돼

왜 그러냐고는 내가 안 물어볼게
그러니까 자주 와
혼자 있어 버릇하면 못써

더는, 외로워지지 말아라, 지평아

괜찮아, 울지 마
할미가 있잖아

 


상무님,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박동천

너 이거 뭐냐?

어라? 이게, 이게 왜 여기 있지?
뭐야, 이거 누가 여기다 갖다 놨어
그거 회사 메일로 온 건데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 보육원에서 나온 친구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힘들잖아요
그, 왜, 뭐랄까 청소년과 어른의 경계랄까?

그래서?

아, 그 친구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일대일 후원을 매칭해 주는 스타트업이에요
그, 여기 대표님도 보육원 출신이라 
굉장히 뭐, 열성적이고
어, 사업 취지도 너무 좋고

취지만 좋지, 취지만
가치 창출 못 하는 자선 사업 하는 데

왜 힘들게 모은 우리 LP들 
돈을 갖다 쓰냐고요?
네, 그래서 지금 미팅 취소하려고 했어요

취소하지 마
미팅 잡아

예? 어? 그럼,



저 만큼 한지평님을 이해 하는 사람은 없답니다

상무님, 홍 대표님 와 계십니다

홍 대표님? 누구지?

왜, 보육원 나온 아이들 정착하는 
후원 스타트업 있잖아요
기억하시죠?

아, 저 회의실?

안녕하십니까, 한지평입니다

안녕하세요, 홍지석이라고 합니다

아,

예 앉으시죠

투자사에서 먼저 연락받은 게 처음이라
와, 이런 날이 오네요, 진짜, 와

대표님, 진정하시고

아, 예

아, 예

많이 바쁘시죠? 
제가 설명을 빨리하겠습니다

저희 서비스는
갈 데 없는 둘리, 또치, 도우너를 
거둬 준 고길동 아시죠?
그 고길동처럼 보육원에서 나와서
정착이 필요한 친구들을 
후원해 줄 좋은 어른을 찾아서
그 친구들과 매칭시켜 주는 서비스입니다

아, 그럼 다른 거 아쉬운 거 없어요?

아, 없어

정 걸리면 그럼 나보다 더 아쉬운 
사람한테 가 보든가, 그럼, 에이그

 

보육원에서 나오는 나이가 
애매한 나이거든요
아직은 사회의 벽을 
감당할 수 없는 나이라
그 벽을 뛰어넘도록 
꼭 저희 솔루션이,

대표님, 사업 계획서 검토는 
이미 했습니다 조사 충분히 했고요
밸류는 고민해 보셨습니까?

아, 아직 밸류를 
산정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죠?

지금 필요한 자금이 어느 정도입니까?

1억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일단 저희 회사에서 
추진하기엔 무리가 있고요

아, 1억 아니고 5천이면 될까요?

대신, 개인 투자를 하고 싶은데

 

아, 개인으로요? 왜요?

대표님 목소리가 좋아서요

제 목소리요?

1억을 투자하고 3억을 기부하죠
전 지분은 많이 필요 없습니다
대신 저한테도 
좋은 친구들을 매칭해 주세요
어떻습니까?

아휴, 저기,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요
내가 고마웠어요

복받으실 거예요


와, 대박

어떠셨어요?

네가 고른 팀 같지, 뭐

그게 무슨 팀인데요?

성장 전략 하나 없이 
꿈과 희망만 채워졌고
취지만 좋은 뭐, 그런?

아, 죄송합니다, 
제가 또 뻘짓 했네요

잘했어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 말 안 했는데?

아닌데, 했는데, 내가 들었는데
방금 잘했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아닌데?

아닌데?
했는데, 잘했다고 했잖아요

안 했어

들었지?
나 잘했다고 한 거 들었지?
들었죠? 아이, 아이, 했, 했잖아요 
잘했다고, 예?

가, 저기로, 빨리, 안 했다니까

예스!
잘했다고 했잖아요

일해요, 빨리


아, 잠깐만요

안 타세요?


이제 저 안 피하시네요

생각보다 내가 회복 탄력성이 좋더라고
말해 봐요, 
나한테 할 말 있댔잖아



해 봐요, 들을 준비 됐으니까

대신 고마웠다, 미안하다 
이건 아니까 빼고 해요

어, 그걸 빼면 안 되는데

고맙다는 말은, 그동안 당신한테 
지칠 정도로 들었어요
이미 갚고도 남아

그리고 그 시절 나도 친구 하나 없었고
당신 편지로 꽤 위로받았으니까
우리 고마운 건 서로 퉁칩시다

됐죠?

당신 편지를 읽고도
15년이나 난 당신을 찾지 않았지만
남도산 씨는 편지를 읽은 그날
스스로 당신을 찾아갔어요

그러니까 그 편지의 남도산은
내가 아닙니다
미안할 것도, 자책할 것도 없어요

정말 여지를 안 주시네요

됐죠?


전 싫습니다

왜요?
여기서 한 상무만큼 
청명컴퍼니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 없잖아요

동천이
박 과장도 잘 압니다
박 과장
박동천 씨
동천아

네, 상무님

못 들은 척했지?

아니요, 저 서류에 너무 집중하느라고 
진짜로 못 들었어요

어떻습니까? 이, 박 과장도
삼산텍 시절부터 계속 관심을 가지고

아유, 관심 없었는데
아니, 있어도
상무님 관심에 비하면 시리즈가 다르죠
전 턱도 없습니다

뭐, 내 생각도 그래요
난 청명컴퍼니의 가능성을
그들이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더 높게 봐요
제이커브를 곧 그릴 것 같고
아니, 우리 눈에 보이면 
다른 투자자 눈에도 띄겠죠

뺏겨서는 안 될 딜이라는 거 잘 알죠?
꼭 성사시켜 오세요

 

대표님
대표, 대표님, 대표,

파이팅


웃, 웃은 거니?


이제 와서 받아 달라 빌 수도 없고
아, 미치겠네, 진짜

아, 왜 나야, 왜

무슨 얘긴데 따로 보자고 하십니까?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
상무님이 저한테요?

윤 대표님이 청명컴퍼니,

예?

윤 대표님이 청명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때요, 우리 투자 받을 생각 있어요?

아니, 왜 그런 얘기를 
절 따로 불러서 얘기합니까?
사무실 가서 서 대표랑 다 같이,

시키니까 하긴 해야겠고 
엮이기는 싫고, 그래서 그래요
당신 내 투자 받는 거 
죽어라 싫어했잖아

그렇죠, 엄청 싫어했죠

한 상무님
상무님의 솔직한 투자 의견이 
어떻게 됩니까?

감정은 빼고, 이성으로 판단해 주세요

내 두 번째 기록을 기억합니까?

기억하죠
투자 검토 후, 투자를 안 한 
회사 중에 성공한 기업은 제로
라고 하셨죠

청명컴퍼니를 놓친다면 
그 기록이 깨질 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투자자로서, 욕심납니다

아주 많이

같이 가시죠, 가서 서 대표랑 
투자 얘기 제대로 해 봅시다

어, 남도산 씨
당신 진짜 내 투자 받고 싶어?
받으면 난 사외 이사로
청명컴퍼니에 감 놔라 배 놔라 
잔소리하고 계속 엮여야 되는데?
내 잔소리 듣는 거 지겹지 않습니까?

지겹죠

근데 왜 받지?
왜 그땐 아니고 
지금은 받겠다는 건데?

이번 제안은, 적선이 아니라
진짜 투자로 들리니까요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어색하네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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