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E10
언젠가, 나를 알아주길 바랐고
나를 봐 주길 바랐는데
이런 눈은 아니었다
후회는, 늘 뒤늦게 찾아온다
팀장님이 얘기해 주세요
솔직하게, 더는 속일 생각 하지 말고요
하, 나 더 이상 바보 되기 싫어요
15년 전 편지는 누가 쓴 거죠?
도산이예요? 한 팀장님이에요?
할머니가 부탁을 했어요
서달미 씨한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썼습니다
처음부터 아니었던 거네?
그럼 도산이는 뭐예요?
그 이름은 뭔데
그때는 별생각 없이 지었어요
눈앞에 신문이 있었고
거기 기사에 그 이름이 있었고
그냥 기사 이름?
진짜 남이었네
그럼 그 네트워킹 파티에
도산이는 어떻게 온 거죠?
팀장님 말대로라면
도산이한테 난 생판 남인데 어떻게 알고
내가 찾았어요
그 기사의 남도산을
그리고, 편지 속 남도산이 돼서
파티에 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럼 도산이는
왜 팀장님 부탁을 들어줬어요?
난 도산이한테 남인데?
삼산텍은 그때, 투자가 아쉬운 상황이라,
돈 때문이네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처음엔 그랬는데, 나중엔 진심이 됐고
나도,
팀장님이 어떻게 알아요!
시작부터 다 거짓말인데 내가 어떻게 믿어!
서달미 씨, 나는,
달미야, 울지 마, 어?
제발 울지 마, 어?
저기, 아가씨
아, 미안한데 혼자면 저쪽 자리
합석 좀 해 주면 안 될까?
점심이라 자리가 모자라서
아, 네
일행 있습니다
아, 예
아, 그럼 비빔 둘로?
네, 두 개요
들어 줬으면 좋겠는데
불편하겠지만 꼭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뭔데요
그때 그랬죠?
솔직했으면 좋겠다고
아직 서달미 씨가 모르는 것들이 있어요
또 있어요?
나 남도산 씨하고
그렇게 각별한 사이 아닙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쪽이에요
네
그렇지만 오해는 말았으면 해서
모든 게 내 부탁으로 시작된 건 아닙니다
네트워킹 파티에 간 것도
서달미 씨에게 명함을 준 것도
샌드박스에서 서달미 씨한테 CEO를 제안한 것도
다 남도산 씨 본인 의지예요
비빔 둘이죠?
아, 감사합니다
저, 한 팀장님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요?
가평 잣칼국수는
진짜 매주 가서 먹어요?
아니요
서달미 씨가 사다 준 게 처음입니다
제가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었네요
오지랖 아닌데, 좋아합니다
이 말을 국수 비비면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서달미 씨를 좋아해요
솔직하고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부담 주려고 하는 말 아니고
그냥 내 감정일 뿐이고
대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니까 한 귀로 흘려요
이걸로 서로 불편하고 피하고
아휴, 그런 거 구질구질해서 싫고
먹어요, 불겠다
아 그때 그 잣칼국수 맛있었어요, 엄청
아까 팀장님 얘기 되게 멋있었어요
대안이 돼 주겠단 말 되게 든든하던데
당신한테 칭찬받자고 한 말 아닙니다
이렇게 멋있고 든든한 분이
왜 우리 형한텐 그렇게 가혹했을까
형?
말해 봐요, 우리 형
왜 죽였습니까?
지금 나한테 한 말입니까?
내가 당신 형을 죽였다고?
네
아, 지금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내가 당신 형을 죽였으면 여기 있겠어요?
감옥을 갔어야지? 참 나
이봐요, 난 당신 형을 몰라
아니, 당신한테 형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떻게 내가 당신,
애도까진 안 바랐는데
기억도 못 할 줄은 몰랐네
난 고백을, 국수 비비면서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담담한 척, 쿨한 척했는데
아, 나 속으로는
나 속으로 엄청 떨었어요 어, 엄청
솔직히 대답해 주길 바라죠
한편으론, 한편으로는 겁도 나요
아니라 그러면 끝이잖아요,
영영 끝이잖아
무서워, 후회도 돼요
고백하지 말 걸 그랬나
끝까지 숨길 걸 그랬나 뭐,
아니요
숨겼으면 후회했을 거예요 한 1%쯤?
괜히란 말은 없어요
모든 선택엔 이유가 있죠
그러니까 당신 선택을 믿어 봐요
그러다가 지금처럼 그 믿음이 흔들릴 땐
누군가의 힘을, 조금 빌려 보는 거죠
누구,
조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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