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E12
이게 무슨 소리예요?
너 대체 왜 그랬냐?
한 팀장이 하는 말이니까
야!
맨날 초 치는 소리만 하잖아!
안 된다, 문제다, 자격 없다
기운 빠지는 소리밖에 더 하냐고
언제까지 그 인간한테 질질 끌려다닐래
그 인간 말이 무슨 법이라도 돼?
우리 멘토잖아요!
당신한테나 멘토고 좋은 사람이지!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알기나 합니까?
그 인간은요
우리 형, 형을 죽인 인간이에요
우, 우리한테 하듯이
우리 형 사업을 사사건건 트집 잡으면서
투자자들 다 쫓아냈어요
자금줄 끊기니까 사업도 실패하고
형은, 지금도 그래!
결국 투자자 쫓아내는 소리 하잖아
그러니까 듣지 마요 우리 형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한 팀장님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투자자로서 의견을 얘기한 건데
트집으로 들렸다면
유감이네요
유감?
사람이 죽었는데 유감?
야, 야, 김용산!
그때 내가 당신 형의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으면
죄 없는 LP들이 그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았어요
쓴소리라도 솔직한 말을 해야 돼요
그게 내 일이에요
쓴소리?
그럼, 당, 그럼 당신이 지금
이 상황을 좀 얘기해 봐요
감정 싹 다 지우고
그 잘난 쓴소리 한번 해 봐요 솔직하게
어, 계약은 끝났고
내 탓 네 탓 따질 상황 아니에요
굳이 따지자면 계약서 확인 안 한
당신들이 가장 큰 책임이니까
그냥 받아들이세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투스토가 30억이나 주고 인수한 건
눈길 서비스의 사업성이 아니라
눈길 솔루션의 정확도 때문이에요
그만해요
그래서 두 사람이 해고되는 거고
그만하라고!
저들이 남는 겁니다
그렇게밖에 말 못 해요?
상처 주자고 작정했냐고
그 정도 말이 상처면 사업하지 말았어야지
이번 인수
나쁠 거 없어요
팀 해체되는 것만 빼면
오히려 좋은 조건이야
눈길은 포기해요
어차피 이번 건 아니어도
오래 못 갈 서비스였어
그 좋은 기술
좀 더 돈 되는 데 써요
왜 캐비어로 알탕을 만드나
눈길은 돈 많이 벌고 그다음에 그 돈으로,
도와주세요
참 나, 사람을 이 지경으로 패 놓고
뭐, 도와 달라고?
지금 이게 무슨 경우지?
할머니가, 절대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뭘 얘기하려고 이렇게 서두가 길어
눈길, 달미 할머니 때문에
시작한 서비스예요
할머니 눈이 많이 안 좋아요
머지않아 실명하실 거예요
도와주세요, 제발
실, 실명
어?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어?
장사 마감하셨어요?
아, 했지, 그럼
근데 너 얼굴이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아니, 아, 맞은 게 아니라, 싸웠어요
싸워?
아, 누가 우리 순딩이한테
싸움을 걸었어, 어느 놈이!
그냥 내가 잘못했어요
너 같은 순딩이가 뭔 잘못을 했다 그래, 쯧
아, 그 순딩이 소리 좀 하지 마요
나 순딩이 아니에요
네가 왜 순딩이가 아니야
내가 아는 놈 중에 제일로 순한데
아니라고요
나 순딩이 아니에요
할머니, 저 한참 잘못 봤어요
순딩아
저요, 남이 상처받든 말든 막말하는 개차반이에요
세상 잘난 척 다 아는 척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등신이라고요
저 순딩이 아니에요
지평아
왜 그래, 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할머니
얘가 왜 이래
뭐야, 어?
무슨 일이야, 대체, 어?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 내가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미안해요
할머니
그래
우린 맨날 국수만 먹네요?
아, 이 시간에 문 연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
오돌뼈라도 시킬까요?
아, 됐습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에요
팀장님
예?
저희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떤 답을 원해요?
팩트를 얘기해 주세요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오지 않을 미래 말고
현실요
솔직하고 냉정하게
하, 그게,
힘든 부탁일까요?
아니요, 뭐, 내가 힘들 게 뭐 있어요
듣는 쪽이 힘들까 봐 그러지
미안하고
팀장님
아까부터 자꾸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저 팀장님 말 듣고 한 번도 힘든 적 없었어요
상처받은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한 번도?
네, 한 번도
두 번?
세 번?
뭐, 한 열 번 미만으로 상처는 받았어요
근데 바로 인정했네요
내가 봐도 한심했거든
맷집 세네, 서달미 씨
네, 저 맷집 세요
그러니까 얘기해 주세요
저희 어떡해요?
투스토하고 이 계약으로 싸우자고 들면
이기지 못할 거예요
체급이 다를뿐더러 계약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그럼요?
이기지 못할 적이면 아군이 돼라
라는 말이 있죠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너 생일이잖아, 오늘
잊었어?
아, 깜빡했어
하긴 우리가 요즘 일이 좀 많았다, 그렇지?
도산아
넌 언제부터 코딩 잘한다는 걸 알았어? 어?
나 열세 살쯤인가? 그때 알았,
아, 아! 최양원 기자, 최양원
열세 살에 어떻게 알았는데?
그게, 미로 게임을 하는데
딴 애들은 길 찾는 동안
난 길 찾는 알고리즘을 만들었거든
열세 살에 그게 어떻게 돼?
나한텐 코딩이 편한 말이야
그래서 알고리즘 짜는 게 더 편했어
달미야, 그것보다
우리 인수 건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너 같은 천재가 나올 확률은 얼마쯤 될까?
한 10만분의 1?
달미야
알렉스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널 알아봐 줄 확률은 한 천만분의 1?
그거 엄청난 확률이야
그 확률을 못 뚫고 묻히는 천재들도 많잖아
얼마 전까지의 너처럼
따지고 보면 로또보다 더한 확률인데
놓치기 아깝잖아
화, 확률?
세상에서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은 똑같아
공평하게 대단해
그리고 나 개발 빼곤 다 엉망이야
언어 영역은 낙제 수준이고 메타포도 몰라
뭐, 피아노, 그림 예체능 쪽은 꽝이고
이게 디저트 포크인지 샐러드 포크인지도
구별 못 해, 나 천재 아니고
바보 천치야, 됐지?
도산아
나 여기 갑갑해서 더는 못 있겠다
먼저 나가 있을게
도산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알아, 아는데 너라면 가?
눈길도 팀도 버리고 가?
가, 난 무조건 가
너처럼 능력만 있으면 난 가
난 싫어
그냥 여기가 좋아, 여기면 다 돼
샌드박스든 쪄 죽을 옥탑이든
그냥 여기가 좋다고
야!
사람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가라, 좀!
나 쪽팔려, 구질구질해
그 대단한 사람이 널 선택하고 난 버렸잖아
네가 맞고 난 아니라잖아
이걸 꼭 내 입으로 얘길 해야 돼?
그게 싫어서 근사한 데서
쿨한 척 멋있는 척 결론 내겠다는데
좀 맞춰 주면 안 돼?
달미야, 제발, 어?
도산아
넌 편지 속 그 도산이가 아니야
나도 네 꿈이 아니고
헤어지자는 뜻이야?
허상을 붙잡고 땡깡 부리지 말잔 뜻이야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우리가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꿈만 먹고 살아,
안 그래? 갈게
나 오늘 생일이야
알아
이 얘기 하려고 만나러 온 거였어?
어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 얘기 하려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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