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기록 E06



우리 집에 우산 있어


다 됐어?

뭘 그렇게 놀라?

아이, 보, 보통 노크하고 노크한 사람이

문을 여는 거잖아

근데 네가 먼저 여니까, 뭐

생각 못 하고 있다가 놀란 거지

 

성실하게 답변하시네요?

마음에 안 듭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우리 집에서 나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요 앞까지 같이 가 줄게

왜?

네가 문 닫고 나가면 나 혼자 남잖아

혼자 들어오는 건 괜찮고?

그건 괜찮아, 익숙하니까

안 돼

왜?

내가 너 데려다준 보람이 없잖아

어떤 보람이 있었는데?

안전한 귀가

마무리 지어야 돼

안 된다고 확실하게 얘기해야 돼

아, 저, 그,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니, 아까 얘기하다 말았잖아

네가 천천히 알아 가자고 했잖아

돌려 말한 거절 아니야?

 

아니야, 나도 좋아는 해

그럼 좋아해

다음에는 뭐 하는 거야?

모르겠어,

네가 가르쳐 줘

연애

졌다


할아버지 포트폴리오 만들 때

내가 메이크업해 줄게

오지랖인가?

아니야, 나야 해 주면 고맙지

그럼 할래

너 탈덕하고 나서 새로운 덕질 상대가 필요하거든

덕질의 최고는 키우는 맛이지

하고 싶으면 해

고마워


이날 정하는 내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을까?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 눈 맞춰야 했었다

우리의 시작을 좀 더 깊게 담아 뒀어야 했다

그때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좀 비현실적인 거 같아

네가 이 안에서 운전하고 있는 거

 

왜 그렇게 느끼지?

음, 너 자체가 비현실적인 거 같아

지금 우리가 같이 있는 것도

현실인지 되게 헷갈려

나 사진 찍어도 돼?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

자, 하나, 둘, 셋

현실인 거 확실히 느끼게 해 줄게

우리 영화 볼래?

좋아,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된 영화

찜해 놓은 거 있어

왜?

문 앞까지 데려다주게

에이, 됐거든요?

아, 쟤는 말 진짜 안 들어

그거 알아?

비 안 왔다

 

비 오면 생각날 거 같아

누가?

대답할까, 말까?

대답할까 말까 할 때는

대답하는 거야

안 할래

들어가

 

너 먼저 가

아니

너 들어가는 거 볼래

내가 널 어떻게 이기겠니?


너무 일찍이라 빈속에는 팝콘

안 좋을 거 같아 망설였어

잘 샀어

음, 캐러멜 팝콘이네?

내가 좋아해

넌 안 좋아해?

팝콘은 캐러멜이지

아직 시작 안 하나? 몇 시지?

응? 내가 알려 줄게

6시 55분

시각 장애인 시계야, 촉감을 사용해

처음 봐

이건 분, 이건 시, 해 볼래?

 

타인의 감정 공감하는 삶을 살고 싶어

그런 시도 중의 하나야, 이 시계는


아주 빤지르르하시네?

 

푸석하지 않아? 새벽에 일어났어

7시에 정하랑 조조 영화 봤거든

걔가 아침에 출근해야 돼서

이걸 때릴까?

그게 푸석하면 나는 1년 365일

푸석했으면 좋겠다

정하랑 언제 그렇게 됐냐?

너도 만나는 여자 있잖아

왜 까지를 못하냐?

까고 싶어 죽겠다

말하고 싶어 죽겠는데

아, 답답해서 죽을 거 같아

 

나한테 말하지 마

왜?

네 고통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

이런, 씨

너, 정하하고 나하고 누가 더 좋아?

정하

 

남자 새끼들하고 의리를 찾는 내가 등신이지

넌 누가 더 좋아?

당연히 해나지

야!

아이, 미친놈 아니야,

동생하고!

 

말하지 마

너야말로 들켜도

내가 알았다는 얘기 하지 마

 

이거지? 두 개네?

하나는 보관용으로 가지라고

고맙다

곧 죽을 놈이 예의도 바르네

나 죽어?

죽겠지, 해효한테


미안해, 나 잘라

 

생각해 봤는데

난 매니저 자격이 없어

촐랑대고 감정 기복도 심하고

나대기도 잘해

자아비판도 잘하네

과연 내가 너한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전제가 틀렸어

남을 위해 일한다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걸 더 믿어, 난

나도 다 알아

사람들이 말해, 다 안다고

아는데 안 하는 건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하, 쯧, 비즈니스를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어

따지고 보면 영화도 내가 따 온 게 아니잖아

내가 한 일 없어

이번 일로 누나가 배운 게 있으면 됐어

세상에는 공짜 없으니까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근데 너 대단하다

왜 이렇게 차분해?

이런 일 많이 당해 봤으니까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알아

내가 누나한테 화나는 건,

 

이렇게 반성하는데 화나?

일은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어

하지만 문제를 회피하는 건 싫어

연락 불통의 매니저는 최악이야

 

너 지금 나 혼내는 거야?

자르라는 말을 어떻게 해?

그건 마지막에 하는 거잖아

농담이야

누나가 이 일을 가볍게 생각한 건 아니고?

누나, 나한테는 시간이 별로 없어

어떤 때는,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


아빠가 왜 거기서 나와?

이게 뭐냐?

할아버지 모델 학원 끊어 드렸어

말려도 시원찮은데 네가 끊어 드렸어?

너 아빠 말 뭘로 들어? 뭘로 듣냐!

 

할아버지가 일거리 원하셨어

아빠한테 도움 되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일 찾아 드린 거야

일을 찾아도 꼭 자기같이

현실성 없는 것만 찾아왔어

네가 그러니까 아빠가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거야!

 

나 대학 형 때문에 포기했어

우리 둘 다 대학 등록금 내야 되니까

우리 둘 중 하나는 그만둬야 된다고 생각했어

엄마 아빠 힘드니까

누가 너더러 그런 걱정 하래?

형은 공부 잘하니까

그게 나라고 생각했어!

어차피 난 학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니까

이래도 현실성이 없어?

왜 내 희생은 아빠 눈에는 안 보여?

지금 생색내는 거야?

학교 자기가 관두고 싶어서 관뒀으면서

누구 핑계를 대?

네가 그런 소가지니까 안 되는 거야

할아버지 똑 빼닮아 갖고!

할아버지 닮으면 어때서 그래?

아빠 닮는 거보다는 훨씬 나아!

 

이놈의 새끼가 진짜!

때렸어?


어, 정하야

 

감기 걸렸어?

아니

목소리가 감기 걸린 거 같아

아니라니까 다행이다

나 놀고 싶어

나랑 같이 놀면 안 돼?


여기 되게 좋다

좋은 데 많이 아시네요?

 

우울할 때 오는 곳 중 하나야

우울했어?

어, 근데 너 만나면 우울하지 않아

 

그럼 내가 우울증 약이라는 거네?

약값 주세요

진짜 줘?

 

와, 신난다, 근데 왜 이렇게 많이 줘?

거스름돈 줘

떼먹을래

공짜로 돈 받았다!

 

엄마야, 깜짝이야


아, 여기 진짜 좋다

피아노 있다

우리 때는 엄마들 성화에

피아노 학원 필수 코스 아니었니?

아니

너도 칠 줄 아네?

난 혼자 배웠어

뭐든 학원 안 다니고

혼자 파는 스타일이야

 

지금 천재라는 거야?

가난하다는 거야

멋있어

캄캄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아서

눈을 깜빡이는 넌 아주 아름답단다

수많은 망설임 끝에 내딛은 걸음에

잡아 준 두 손을 기억할게요

 

지금 이 순간 네가 있어서 감사해

여자를 사랑하면 마법이 일어난다

여자에게는 이름이 있다

안정하


Record Of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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